재미있는 논문을 우연히 검색했다. 한지은의 "식민지 조선 여성의 해외여행과 글쓰기: 나혜석의 '구미만유기'를 사례로"1라는 글이다.
나혜석(1896-1948)은 1927년 한국 여성 최초로 세계여행, 그러니까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통해 유럽, '꽃의 도시, 파리'까지 여행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대중들의 관심사는 최린(1878-1958)과의 연애, 남편 김우영(1886-1958)과의 이혼, 이후의 비극적 삶에 집중되었었나보다. 나혜석에 대한 재평가는 1990년대 중반 이후에나 이루어졌다고 한다2.

해당 논문에 나혜석의 여행 동기가 적혀있다.
"내게 늘 불안을 주는 네 가지 문제가 있었다. 즉 첫째,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잘사나. 둘째, 남녀 간 어떻게 살아야 평화스럽게 살까. 셋째, 여자의 지위는 어떠한 것인가. 넷째, 그림의 요점은 무엇인가. 이것은 실로 알기 어려운 문제다. 더욱이 나의 견식, 나의 경험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면서도 돌연히 동경되고 알고 싶었다. 그리하여 이테리나 불란서화단을 동경하고 구미 여자의 활동이 보고 싶었고 구미인의 생활을 맛보고 싶었다." 나혜석3
1년 8개월 23일간 유럽 각국을 여행한 나혜석의 여정은 다음과 같다.
1927년 6월 19일 : 부산진역에서 출발.
경성역에서 경의선을 타고 안둥(현 단둥)-펑텐(현 선약)-하얼빈-창춘-만저우리까지 '만철'의 동지철도 구간을 이용해 이동.
만저우리에서 시베리아 횡단철도로 환승.
모스크바를 지나 폴란드를 거쳐 파리에 도착. 약 7개월 체류.
10일간 스위스 여행 후 파리로 돌아옴.
벨기에와 네덜란드 여행후 다시 파리로 돌아옴. (잠시 프랑스어 공부).
독일과 런든 등을 한달간 여행 후 다시 파리로 돌아옴.
이듬해 이탈리아와 에스파냐 여행.
기선을 통해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워싱턴 D.C., 필라델피아, 시카고, 그랜드캐니언,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고 등 여행.
17일간 기선을 타고 3월에 요코하마에 도착 후 부산으로 귀국4.
위 논문에서 다룬 나혜석의 여행기는 흥미롭다. 지금도 아직 거품이 다 꺼지지는 않았겠지만, 당시 파리라는 도시에 대해 '번화하고' '화려한' 이미지가 좀 과하게 붙여졌나보다. 나혜석이 파리에 도착해서 본 모습은 상상했던 것과 달랐나보다.
"파리라면 누구든지 화려한 곳으로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파리에 처음 도착할 때는 누구든지 예상 밖인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선 날씨가 어두침침한 것과 여자의 의복이 검은색을 많이 사용한 것을 볼 때 첫 인상은 화려한 파리라는 것보다 음침한 파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오래오래 두고 보아야 파리의 화려한 것을 조금씩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나혜석5.

오래전에 일본 친구로부터 '파리 신드롬'이라는 말을 들었었다. 그 친구는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파리의 모습을 목격한 일본 사람들이 그 충격에 실제로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는 얘기를 프랑스어 수업 시간에 발표했었다. 파리의 거리가 화면을 좀 잘 받는 것 같기는 하다. 게다가 보통 하수구, 오줌 냄새 등은 화면에 담기지 않는다. 소음이나 불친절하고 공격적인 사람들, 이곳의 힘든 일상 역시 잘 다뤄지지 않는 모습들일테다.
나혜석이 느낀 '음침함'은 '파리 신드롬'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살짝 겹쳐지는 이미지도 있는게 사실이다. 나혜석이 발견한 '화려함'은 이 도시의 다른 측면에 있는 모습들이었을테다.
"파리의 시가설비, 공원시설 모든 것이 미술적인 것은 물론이요 연극, 활동 사진 어느 것 하나 미술품 아닌 것이 없다. 더욱이 화가에게 새 기분을 돋게 하는 것은 댄스홀이다. 몽파르나스에는 화가 마을인 만큼 값싸고 소박한 댄스홀이 많다. ... 화가들은 이와 같이 마시고 흥껏 웃고 춤추어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날은 후련한 새 기분으로 화면에 접하게 된다. 연극, 오페라, 활동 사진을 가보면 어느 것 하나라도 미의 채굴자 아닌 것이 없어 모두 참고하게 된다. 화가가 있어야만 할 파리요, 피리는 화가를 불러온다. 화가 뿐 아니라 빈자거나 부자거나 유쾌하게 놀 수 있고, 나이가 먹었거나 말거나 어린이같이 노는 파리를 누가 아니 그리워 하리요." 나혜석6.
안타깝게도, 이 도시의 이런 이면의 '화려함'도 이미 이젠 지나간 모습인 것 같다. 내가 이곳에 내려 처음 느꼈던 건, 거대한 공동묘지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다음 글에 썼었다. 2023.04.09 - [여행산책] - 파리 몽파르나스 묘지 산책
파리 몽파르나스 묘지 산책
2023년 4월 봄이 오는 중. 파리에서 나무들이 숨 쉴 수 있는 몇몇 곳 중에 하나. 얼마전까지는 뻬흐 라쉐즈 묘지(Cimitière du Père-Lachaise)에 산책 다닐수있는 곳에 살았었는데, 최근엔 몽파르나스 묘
a4riz.tistory.com
물론 아직 남겨진 흔적들이 있었지만, 그 모습들마저 점차 사라져가는 모습을 눈으로 지켜봐야하는 것도 결코 즐거운 일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나혜석이 지금의 파리의 모습을 본다면 어떨까? 겉의 '화려함', 이면의 '화려함'도 아닌 또다른 '화려함'을 찾아냈을까?
추가 (2025.12.12)
-함께 볼 나혜석의 글-
나, 혜석, « 쏘비엣 로서아행 », in 삼천리, 제 4권 제 12호, 1932년 12월 1일, 60-63쪽, disponible sur le site 공유마당 : https://gongu.copyright.or.kr/gongu/wrt/wrt/view.do?wrtSn=9029286&menuNo=200023
나, 혜석, « 신생활에 들면서 », in 삼천리, 제 7권 제 2호, 1935년 2월 1일, 70-81쪽, disponible sur le site 공유마당 : https://gongu.copyright.or.kr/gongu/wrt/wrt/view.do?wrtSn=9000488&menuNo=200023
- 한지은, "식민지 조선 여성의 해외여행과 글쓰기: 나혜석의 '구미만유기'를 사례로", 한국지리학회지, 8권 3호, 2019, disponible sur le site de koreangeography : http://koreangeography.or.kr/data/file/sub03_4/872601632_3CJWGbdh_07_28429-44729C7D1C1F6C0BA_BDC4B9CEC1F6_C1B6BCB1_BFA9BCBAC0C7.pdf (consulté le 16 juin 2023). [본문으로]
- Ibid., p. 429. [본문으로]
- (1932d:60), Ibid., p. 432. [본문으로]
- Ibid., p. 433. [본문으로]
- (1933c:80), Ibid., p. 437. [본문으로]
- (1933c:80), Ibid., p. 43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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