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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역사

나혜석의 세계여행 그리고 파리 신드롬

by JeanJac 2023. 6. 17.

재미있는 논문을 우연히 검색했다. 한지은의 "식민지 조선 여성의 해외여행과 글쓰기: 나혜석의 '구미만유기'를 사례로"[각주:1]라는 글이다. 

 

나혜석(1896-1948)은 1927년 한국 여성 최초로 세계여행, 그러니까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통해 유럽, '꽃의 도시, 파리'까지 여행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대중들의 관심사는 최린(1878-1958)과의 연애, 남편 김우영(1886-1958)과의 이혼, 이후의 비극적 삶에 집중되었었나보다. 나혜석에 대한 재평가는 1990년대 중반 이후에나 이루어졌다고 한다[각주:2].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나혜석' (1920년 초의 나혜석)

 

해당 논문에 나혜석의 여행 동기가 적혀있다. 

 

"내게 늘 불안을 주는 네 가지 문제가 있었다. 즉 첫째,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잘사나. 둘째, 남녀 간 어떻게 살아야 평화스럽게 살까. 셋째, 여자의 지위는 어떠한 것인가. 넷째, 그림의 요점은 무엇인가. 이것은 실로 알기 어려운 문제다. 더욱이 나의 견식, 나의 경험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면서도 돌연히 동경되고 알고 싶었다. 그리하여 이테리나 불란서화단을 동경하고 구미 여자의 활동이 보고 싶었고 구미인의 생활을 맛보고 싶었다." 나혜석[각주:3]

 

1년 8개월 23일간 유럽 각국을 여행한 나혜석의 여정은 다음과 같다. 

 

1927년 6월 19일 : 부산진역에서 출발.
경성역에서 경의선을 타고 안둥(현 단둥)-펑텐(현 선약)-하얼빈-창춘-만저우리까지 '만철'의 동지철도 구간을 이용해 이동.
만저우리에서 시베리아 횡단철도로 환승.
모스크바를 지나 폴란드를 거쳐 파리에 도착. 약 7개월 체류.
10일간 스위스 여행 후 파리로 돌아옴.
벨기에와 네덜란드 여행후 다시 파리로 돌아옴. (잠시 프랑스어 공부).
독일과 런든 등을 한달간 여행 후 다시 파리로 돌아옴.
이듬해 이탈리아와 에스파냐 여행.
기선을 통해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워싱턴 D.C., 필라델피아, 시카고, 그랜드캐니언,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고 등 여행.
17일간 기선을 타고 3월에 요코하마에 도착 후 부산으로 귀국[각주:4]

 

위 논문에서 다룬 나혜석의 여행기는 흥미롭다. 지금도 아직 거품이 다 꺼지지는 않았겠지만, 당시 파리라는 도시에 대해 '번화하고' '화려한' 이미지가 좀 과하게 붙여졌나보다. 나혜석이 파리에 도착해서 본 모습은 상상했던 것과 달랐나보다. 

 

"파리라면 누구든지 화려한 곳으로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파리에 처음 도착할 때는 누구든지 예상 밖인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선 날씨가 어두침침한 것과 여자의 의복이 검은색을 많이 사용한 것을 볼 때 첫 인상은 화려한 파리라는 것보다 음침한 파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오래오래 두고 보아야 파리의 화려한 것을 조금씩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나혜석[각주:5].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나혜석', 파리유학 시절.

 

오래전에 일본 친구로부터 '파리 신드롬'이라는 말을 들었었다. 그 친구는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파리의 모습을 목격한 일본 사람들이 그 충격에 실제로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는 얘기를 프랑스어 수업 시간에 발표했었다. 파리의 거리가 화면을 좀 잘 받는 것 같기는 하다. 게다가 보통 하수구, 오줌 냄새 등은 화면에 담기지 않는다. 소음이나 불친절하고 공격적인 사람들, 이곳의 힘든 일상 역시 잘 다뤄지지 않는 모습들일테다. 

 

나혜석이 느낀 '음침함'은 '파리 신드롬'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살짝 겹쳐지는 이미지도 있는게 사실이다. 나혜석이 발견한 '화려함'은 이 도시의 다른 측면에 있는 모습들이었을테다. 

 

"파리의 시가설비, 공원시설 모든 것이 미술적인 것은 물론이요 연극, 활동 사진 어느 것 하나 미술품 아닌 것이 없다. 더욱이 화가에게 새 기분을 돋게 하는 것은 댄스홀이다. 몽파르나스에는 화가 마을인 만큼 값싸고 소박한 댄스홀이 많다. ... 화가들은 이와 같이 마시고 흥껏 웃고 춤추어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날은 후련한 새 기분으로 화면에 접하게 된다. 연극, 오페라, 활동 사진을 가보면 어느 것 하나라도 미의 채굴자 아닌 것이 없어 모두 참고하게 된다. 화가가 있어야만 할 파리요, 피리는 화가를 불러온다. 화가 뿐 아니라 빈자거나 부자거나 유쾌하게 놀 수 있고, 나이가 먹었거나 말거나 어린이같이 노는 파리를 누가 아니 그리워 하리요." 나혜석[각주:6].

 

안타깝게도, 이 도시의 이런 이면의 '화려함'도 이미 이젠 지나간 모습인 것 같다. 내가 이곳에 내려 처음 느꼈던 건, 거대한 공동묘지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다음 글에 썼었다. 2023.04.09 - [여행산책] - 파리 몽파르나스 묘지 산책  

 

파리 몽파르나스 묘지 산책

2023년 4월 봄이 오는 중. 파리에서 나무들이 숨 쉴 수 있는 몇몇 곳 중에 하나. 얼마전까지는 뻬흐 라쉐즈 묘지(Cimitière du Père-Lachaise)에 산책 다닐수있는 곳에 살았었는데, 최근엔 몽파르나스 묘

a4riz.tistory.com

 

물론 아직 남겨진 흔적들이 있었지만, 그 모습들마저 점차 사라져가는 모습을 눈으로 지켜봐야하는 것도 결코 즐거운 일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나혜석이 지금의 파리의 모습을 본다면 어떨까? 겉의 '화려함', 이면의 '화려함'도 아닌 또다른 '화려함'을 찾아냈을까? 

 

 

  1. 한지은, "식민지 조선 여성의 해외여행과 글쓰기: 나혜석의 '구미만유기'를 사례로", 한국지리학회지, 8권 3호, 2019, disponible sur le site de koreangeography : http://koreangeography.or.kr/data/file/sub03_4/872601632_3CJWGbdh_07_28429-44729C7D1C1F6C0BA_BDC4B9CEC1F6_C1B6BCB1_BFA9BCBAC0C7.pdf (consulté le 16 juin 2023). [본문으로]
  2. Ibid., p. 429. [본문으로]
  3.  (1932d:60), Ibid., p. 432. [본문으로]
  4. Ibid., p. 433. [본문으로]
  5. (1933c:80), Ibid., p. 437. [본문으로]
  6. (1933c:80), Ibid., p. 43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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