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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역사

'참회라는 어려운 수련 앞에 선 일본', 도미니크 모이시

by JeanJac 2023. 4. 25.

레 제코(Les Echos)에 2015년에 실린, 지정학자 도미니크 모이시(Dominique Moïsi)의 « 참회라는 어려운 수련 앞에 선 일본 »이라는 기사[각주:1]가 인상 깊다. 

 

글쓴이에 의하면 자국의 잔학 행위에 대해 인식하려면 민주적 문화, 그리고 규칙이라기 보다는 이례인 자신감이 함께 있어야한다. 독일은 전후에 성공적으로 이를 해냈다. 반대로 터키[각주:2]는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일본은 이 둘 사이에 위치한다[각주:3]

 

도미니크 모이시는 "모든 역사는 동시대적이다"라는 이탈리아의 철학자 베네데토 크로체(Benedetto Croce, 1866-1952)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시작한다. 그는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에 관한 역사적 기념이 가파르게 진행되는 현 상황에서, 위의 말을 더 깊이 새겨 들어야한다고 강조한다. 수십년이 지나면서 이런 기념들의 의미가 변해가는데, 이건 단지 시간에 따른 변화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과거를 어떻게 다루었느냐를 내게 말해주면,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겠다"라는 말처럼 각 국가 간의 영구적인 비교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Dominique MoïsiBenedetto Croce
도미니크 모이시, 베네데토 크로체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의 'Dominique Moïsi', 'Benedetto Croce' 페이지)

 

글쓴이는 이것은 특히 참회의 영역에서 더욱 사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제 아베 신조(Shinzo Abe, 1954-2022)의 일본(2015년의 기사임)은 콘라트 아데나우어(Konrad Adenauer, 1876-1967)의 독일과 레제프 에르도안(Recep Erdogan)의 터키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듯 보인다고 분석한다. 아베 신조는 2015년 4월 29일에 워싱턴에서 처음으로 미국의 상하 양원이 만난 자리에서 일본 총리로서 연설을 했는데, 이를 통해 독일의 방향으로 아주 작은 발걸음을 떼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일본 총리가 마침내 미국의 시민들에게 애도를 표현했고, "아시아 국가의 시민들에게 고통"을 초래했음을 인정했다는 것이다[각주:4]

 

Konrad AdenauerShinzo AbeRecep Tayyip Erdogan
콘라트 아데나우어, 아베 신조, 레제프 에르도안 (이미지 출처: 위키키디아의 'Konrad Adenauer', 'Shinzo Abe', 'Recep Tayyip Erdogan' 페이지)

 

도미니크 모이시는 그러나 아베 신조가 이 이상 더 나아가지 못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일본의 군대를 위해 성노예로 이용당했던 아시아의 여성에 대한 사죄와 참회를 거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각주:5]

 

위의 상황에 대해 다른 기사를 찾아봤는데, 챌린지(Challenges)에 다음과같은 내용이 나온다. 아베 신조 총리의 연설이 진행되는 동안 캘리포니아 민주당, 마이크 혼다(Mike Honda)의원이 '위안부'(femme de réconfort)[각주:6]였던 86세인 한국의 이용수 할머니를 의회에 초청했었고, 이용수 할머니는 신조 아베가 그의 연설에서 사과하지 않은 것이 "충격적이고 부끄러운"일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위의 기사는 아베 신조가 도미이치 무라야마(Tomiichi Murayama)의 1995년의 역사적 선언에 이미 사용한 "깊은 후회"[각주:7]라는 표현을  유지했음을, 그리고 "무력 분쟁은 항상 여성들에게 먼저 고통을 가했다"는 말을 했을뿐, '위안부'를 언급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각주:8]

 

Tomiichi MurayamaLee Yong-sooMike Honda
도미이치 무라야마, 이용수, 마이크 혼다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의 'Murayama Statement', 'Lee Yong-soo', 'Mike Honda' 페이지), 

 

다시 도미니크 모이시의 기사로 돌아와서) 글쓴이는 과거를 인정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무한한 모델과 뉘앙스가 존재하는데, 이중에 독일, 터키, 일본이라는 세가지 모델이 특별히 구분된다고 말한다. 그중에 독일은 세계와 유럽에서 자신의 위치를 굳건히 하고 있는데, 그것은 나치의 범죄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가장 분명하게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글쓴이는 1970년 10월 7일에 바르소비에서 무릎을 꿇은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1913-1992) 총리, 1985년 5월 8일 게토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행한, 1945년 5월 8일을 독일인들에게 "해방의 날"로 여기도록 촉구한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Richard von Weizsäcker, 1920-2015) 대통령의 연설을 떠올려보라고 말한다[각주:9]. 또한 침묵의 미로(Le Labyrinthe du Silence)라는 영화가 강조한 것처럼 독일을 이상화해서는 안되며, 기억 작업은 길고 어렵다는 것을 강조한다. 

 

Willy BrandtRichard von Weizsäcker
빌리 브란트,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의 'Willy Brandt', 'Richard von Weizsäcker' 페이지)

 

도미니크 모이시는 독일과 정반대의 경우로 오늘날의 레제프 에르도안의 터키의 예를 든다. 오스만 제국에 살던 아르메니아인에 대한 조직적 파괴 100주년에, 학살이라는 단어 사용을 거부하며, 자국의 이미지와 이익에 해가되는 태도에 틀어박혀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속단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터키 사회의 상당 부분은 학살이라는 용어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일본은 이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은 활기있고 열정있는 총리 덕분에 아시아에서 미국의 주요 동맹국의 역할을 되찾았는데, 이는 중국의 저항할 수 없는 힘의 상승 덕분에 재평가된 동맹이며, 일본은 참회에 관해서는 기대할 수 있는 최소의 것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미국에게는 충분할지 몰라도 아시아 대륙에서는 충분하지 않은 것이라고 글쓴이는 말한다. 

 

글쓴이는 중국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선을 보낸다. 과거에 관해서 다른 이들에게 보내는 것처럼 자신에게 "올바른 어조"[각주:10]를 찾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본의 개헌론자의 시도를 가장 강력히 비난하는 중국은 그들의 정권이 자신의 역사에서 저지른 범죄를 직면하는데 서두르지 않는듯이 보인다는 것이다. 나치가 소련에게, 일본이 중국에게 있는 책임보다, 소련과 중국이 그들 시민들의 죽음에 대해 더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장애없이 미래로 향하기위해, 현재를 명확히 인식하며, 과거를 직시하고 초월하기 위해서는 민주적인 문화, 그리고 규칙이라기보다는 이례인 자신감이 함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독일이 사죄에 관해서 모범의 예가 된 데에는 여러가지 요소가 있는데, 글쓴이는 나치 범죄의 명백한 증거,  계몽적이고 선구적인 크리스천인 콘라트 아데나워같은 인물의 존재, 소련이라는 외부 위협의 존재, 그리고 독일을 뛰어넘는 유럽 건설 프로젝트의 경제적 성공을 주요 요소로 꼽는다. 이것은 일본이나 터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조건들이라는 것이다. 

 

일본은 독일의 나치의 범죄와는 다르게 자신들의 범죄에 대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대가를 치른 기분이고, 원자탄이 "백인"[각주:11]들을 대상으로는 실험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납득되고있다고 글쓴이는 말한다. 

 

터키의 경우는, 시간의 흐름 뒤로 피신해, 오스만 제국이 한 세기 전에 저지른 범죄에 대해 책임을 느끼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고 글쓴이는 말한다. 아르메니아인 학살이 나치의 학살에 미친 영향도 보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역사는 신중하게 다뤄져야하지만 책임있게 다뤄져야한다고 말한다. 현재가 과거를 인질로 잡아서는 안됨을, 과거가 현재를 영원히 막을 수는 없음을 말한다. 이런 점에서 일부의 주장과는 달리, 참회는 약함이 아닌 강함의 표시라고 말한다. 

 

 

 

  1. Dominique Moïsi, « Le Japon face à l'exercce difficile de la repentance », in Les Echos, le 4 mai 2015, disponibls sur le site de Les Echos : https://www.lesechos.fr/2015/05/le-japon-face-a-lexercice-difficile-de-la-repentance-244778 (consulté le 25 avril 2023. [본문으로]
  2. 2022년 '튀르키예'로 변경 [본문으로]
  3. « Reconnaître les atrocités commises par son pays suppose un mélange de culture démocratique et de confiance en soi qui est plus l'exception que la règle. L'Allemagne d'après-guerre a réussi à le faire, contrairement à la Turquie. Le Japon se situe désormais entre les deux. », Ibid. [본문으로]
  4. Ibid. [본문으로]
  5. Ibid. [본문으로]
  6. 해당 기사에, 이 용어는 일본의 완곡어법이라는 설명이 있다. « "Repentir" de Shinzo Abe à Washington sur la Guerre de 39-45 », in Challenges, le 29 avril 2015, disponible sur le site de Challenge : https://www.challenges.fr/monde/a-washington-shinzo-abe-evoque-ses-remords-sur-le-passe-du-japon_94496 (consulté le 25 avril 2023). [본문으로]
  7. « profonds remords », Ibid. [본문으로]
  8. Ibid. [본문으로]
  9. Dominique Moïsi, Op. Cit. [본문으로]
  10. « ton juste », Ibid. [본문으로]
  11. « peuple blanc », Ibid.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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