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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소리

영화 아무르, 슈베르트 즉흥곡 D. 899

by JeanJac 2023. 5. 15.

프란츠 슈베르트의 소나타 D. 959에 관해서 찾아보다가 발견했던 글 중에 기억에 깊이 남는 구절이 있었다. (참고: 2023.03.19 - [영상소리] - 슈베르트 소나타 D. 959. 영원에서 찢겨졌다 영원으로 회귀하는 음악 ) 그 구절이 담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앞 뒤의 문장을 더해 옮겨 적어본다. 

 

« La vie de Schubert fut atroce, misérable. Pourtant, sa musique n'en porte nulle trace. Pas de désespoir. Juste une absence d'espoir. C'est moins bruyant mais plus radical. ». Michel Schneider, Musiques de nuit, Éditions Odile Jacob, 2001. p. 196[각주:1].

 

"슈베르트의 삶은 잔혹했다, 비참했다. 하지만, 그의 음악이 그 어떤 흔적도 담지 않는다. 절망이 아닌. 단지 희망의 부재. 덜 요란한,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미셸 슈나이더, 밤의 음악, 오딜 자콥 출판사, 2001, 196쪽.

 

슬프지만 담담한, 그래서 더 아름다울 수 있는 음악, 공감한다. 

 

어쩌면 마카엘 하네케(Michael Haneke, 1942-)의 아무르(Amour, 2012)는 슈베르트 즉흥곡 D. 899에 대한 영화였는지도 모르겠다. 기억이 흐려져서 뒤죽박죽 되어있을테지만, 영화는 이곡의 피아노 연주(No. 1)로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니, 그 전에 경찰이 아파트를 조사하러 온 장면이 있었을 것이다.)

 

젊은 피아니스트의 연주회에 다녀온 노부부. 그들의 일상. 수년이고 늘 그렇게 흘러갔을듯한. 어느날 아침, 잠시 찾아든 정적. 자신이 누구인지 뭘하고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잠깐의 순간. 그런 안느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조르주. 안느가 병원에 다녀온 이후,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돌봄이 필요하게 된, 그래서 '짐'처럼 되어버린 삶. 그렇지만 여전히 담담하게 흘러보내는 시간.

 

에마뉘엘 리바(Emmanuelle Riva, 1927-2017)와 장루이 트랭티냥(Jean-Louis Trintignant, 1930-2022)의 안느와 조르주 연기는 요란스럽지 않았다. 마지막을 향해가는 삶을 그냥 담담히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줬을 뿐. 미셸 슈나이더의 말처럼. 단지 희망의 부재.

 

딸의 역으로 나온 '대배우' 이자벨 위페르(Isabelle Huppert, 1953-)가 그냥 '어린' 배우처럼 느껴질 정도.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가 집으로 찾아오는 장면도 나온다. 안느는 그의 피아니스트의 스승이었던 듯. 이런 방문이 위안이 되지는 않아 보인다. 시간은 흘러갔을 뿐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것만 같다.

 

영화 중간에 잠깐 안느가 피아노를 치는 장면이 나온다. 역시 슈베르트의 곡(No. 3). 아주 짧게 나왔던 연주에 이어지는 장면은 조르주가 오디오를 끄는 장면. 그냥 '툭' 하고 음악을 끈다. 아마 조르주의 기억 속의 장면. 잔인할 정도로 담담했던 이 장면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이미지 출처: 구글 검색 -> https://www.themoviedb.org 의 관련 영화 페이지.

 


 

영화에서 피아노 연주자로 연기했던 알렉상드로 타로(Alexandre Tharaud, 1968-)의 슈베르트 즉흥곡 D. 899 No.3 연주를 들어본다. 

 

https://youtu.be/RVdoHX3dYww

 

지금은 내게 피아노가 없지만, 악보를 올려둔다. 

Schubert, Impromptu D.899 Op. 90 No. 3.pdf
0.38MB

 

 

알프레드 브렌델의 연주(No. 1 - No. 4)도 링크를 걸어둔다. 

 

https://www.youtube.com/watch?v=24DugWBRkYg 

 

그리고리 소콜로프의 연주(No. 2)도 링크에 걸어둔다. 

 

https://youtu.be/VmcqScvd1n8

 

미츠코 우시다의 연주(No. 4)도 링크를 걸어둔다. 

 

https://youtu.be/utGMUuIfjNQ

 

소나타 D.894처럼, 프랑스 뮤직의 '라 트리뷴 데 크리띠그 드 디스크'(La Tribune des Critiques de Disques)에서도 이 곡을 다뤘었다. 말이 좀 많긴 하지만, 각 연주자가 어떻게 다르게 연주하는지 느끼고 생각해볼 수 있게 도움을 준다. (다음 링크 참고 : https://www.radiofrance.fr/francemusique/podcasts/la-tribune-des-critiques-de-disques/impromptus-d-899-de-schubert-1618389

그리고 이전 블로그 글: 2023.03.13 - [영상소리] - 프란츠 슈베르트, 소나타 D.894, 라두 루프 그리고 다른 연주자들)


영화에서는 어느날 복도 창을 통해 집안으로 비둘기가 들어오는 장면이 나온다. 성가신 일일 것이다. 이 일이 마지막 장면에서도 반복되는데, 조르주가 아마 삶을 마감하기 위해 집안을 가스로 채우고 있던 장면. 그때 집안으로 비둘기가 들어와버리니, 좀 난감할 것이다. 아마 이 정도 느낌일까, 이 '난감함'과 비슷할지도 모를, 그래도 '희망'이라는 것을 말할 수 있다면? 

 

"희망은 절망에 달린 날개"라는 말이 떠오른다. 아마 에드몽 자베스(Edmond Jabès, 1912-1991)가 썼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내 기억이 틀렸을 수도 있다. 가물가물해진 내 기억이, 문장도 다르게 재구성해서 기억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툭'하고 꺼져버릴 삶. 그래도 슈베르트의 음악처럼 담담하며 아름답다.

 

 

 

 

 

  1. 다음 글에서 중간의 문장을 발견. Jean-Marie André, « Schubert... La Sonate D 959, in Hegel, 2019/1 (N°1), pp. 59-63, disponible sur la page suivante : https://www.cairn.info/revue-hegel-2019-1-page-59.htm (consulté le 14 mai 202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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