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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전시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 내면의 세계의 여행자

by JeanJac 2023. 4. 12.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 내면의 세계의 여행자'는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에 대한 다큐멘터리의 제목이다[각주:1].

 

 

https://www.youtube.com/watch?v=M4Ry7qsXYsE 

 

다큐멘터리는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가 '예술가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중개자'라는 이상적인 비전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다고 말한다.  

 

"당신들이 내가  사람과 어울리는 걸 꺼려한다며 날 인간혐오자라고 그러는데, 잘못된 이야기다. 난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그들을 증오하지 않기 위해 어울리지 않으려는 것이다."[각주:2] -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는 혼자 아뜰리에에 있는 시간 그리고 드레스덴(Dresde) 근처 숲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다고 한다.

 

"나는 혼자여야한다. 자연을 보고 온전히 느끼도록 나는 혼자임을 알아야한다. 내가 나인 것이기 위해서, 나를 둘러싼 것들에 나를 버리고, 구름과 바위와 연결되어야한다."[각주:3] -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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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문장 받아쓰기와 관련해서 챗GPT의 도움을 받음.

 

그의 그림에는 홀로있는 사람들이, 특히 뒷모습으로 등장한다. 라이프치히 현대미술관(Museum der bildenden Künste, Leipzig)의 큐레이터 얀 니콜라이슨(Jan Nicolaisen)은 이런 모습을 청중에게 등을 보이며 연주하는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 1926-1991)의 연주와 비교해서 말한다(28분무렵). 그의 이러한 태도는 청중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주의가 분산되지 않고 음악에 집중하려는 것이라며, 예술가가 자신의 세계에 빠져들어가는 것이라며.

 

https://youtu.be/r8UkDE8mJbk

이름이 나온 김에 아주아주 오랫만에 들어본다. The Miles Davis Quintet, It Never Enterd My Mind

 

1818년에 화가는 카롤린과 결혼했고, 신혼여행을 뤼겐 섬(l'île de rügen)으로 떠났고, 다큐멘터리는 이때 화가가 그의 멜랑꼴리로부터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그는 이후에도 이곳을 여러차례 방문했다고 한다. 화가는 이곳에서 그린 데생들을 바탕으로 세피아톤의 담채화를 그렸는데, 빛과 그림자 표현에 적합한 방식이었고, 이 그림들의 판매가 그의 생활에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2019년 2월부터 5월까지 파리의 커스토디아재단(Fondation Custodia)에서 열린 푸시킨 미술관 소장품전(Le musée Pouchkine, Cinq cents an de dessins de maîtres)에서 화가의 다음 작품들을 볼수있었다. 

 

Caspar David Friedrich, Deux hommes au bord de la mer, pierre noir et lavis brun, 1830-1835. 2019년 5월 방문 및 촬영.
Caspar David Friedrich, Cercueil sur une tombe fraîche, pierre noire et lavis brun, 1835-1836. 2019년 5월 방문 및 촬영.

https://www.fondationcustodia.fr/Le-Musee-Pouchkine-Cinq-cents-ans-de-dessins-de-maitres-127

 

Le Musée Pouchkine. Cinq cents ans de dessins de maîtres - Fondation Custodia

Cette première grande rétrospective des œuvres graphiques du musée Pouchkine en France couvre les écoles européennes et russes, du XVe au XXe siècle.

www.fondationcustodia.fr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는 왕가의 주문에 수입의 대부분을 의지하지 않는 최초의 예술가 중 한명이었다고 한다(다큐멘터리 12분무렵). 또한 전시 설치의 개념을 최초로 발전시킨 예술가로도 해석해볼수도있겠다 [각주:4]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는 당시 특히 '정치적' 입장때문에 점점 고립되어갔고, 1835년 노졸중으로 오른손이 마비되었고, 1840년에 세상을 떠나고 완전히 잊혀졌다고 한다. 그를 다시 발견한 것은 20세기초 베를린 국립미술관에서 열린 이전 세기의 예술가들의 작품 전시. 비로소 당시의 유행과는 철저히 독립적이었던 그의 작품의 현대성을 발견했다고 다큐멘터리는 말한다. 

 

베를린 구 국립미술관(Alte Nationalgalerie)에서는 그냥 멍하니 그림을 바라보느라 그림 사진들을 찍지 않았나보다. 특히 바닷가의 수도자(Le moine au bord de la mer)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는데, 지금 난 그게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려하고 있다.

 

 

  1. « Caspar David Friedrich : Le voyageur des pays intérieurs ». 프라우케 슐릭아우(Frauke Schlieckau)와 니콜라 그라프(Nicola Graef) 감독 (Allemagne, 2020) [본문으로]
  2. "Vous me dites misanthrope car j'évite la compagnie des hommes. Vous faites erreur. J'aime le monde mais pour ne pas haïr les gens, je m'abstiens de les fréquenter." 13분 무렵 [본문으로]
  3. "Je dois rester seul et savoir que je suis seul pour regarder la nature et la sentir pleinement. Je dois m'abandonner à ceux qui m'entourent, m'unir au nuage et au rocher pour être ce que je suis." 26분 무렵. [본문으로]
  4. 1855년에 그가 주 의원에게 쓴 편지에 그의 네 점의 작품에 대한 공간 선택과 위치와 빛의 조정 등 작품 설치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현대의 전시장의 개념과 비교해볼수있다. Caspar David Friedrich, « Lettre à W. A. Shukowki », Dresde, le 12 décembre 1835, in Carl Gustav Carus, Neuf lettres sur la peinture de paysage & Caspar David Friedrich, Choix de textes, Trad. de l'allemand par Erika Dickenherr et al., Paris, éditions Klincksieck, 1988, pp. 163-16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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