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는 나(블로그의 글쓴이)의 모(국)어가 아니기에, 내가 읽고 이해해는 의미는 프랑스어가 모어인 사람과는 다르다. 또한 나는 프랑스어나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지 않았다. 그리고 원래도 그렇지만 엉뚱한 상상을 하는 경우가 많다.
먼저 영화를 보고 남긴 글이 있다. 2025.12.15 - [영상] - 영화, 속초에서의 겨울(Hiver à Sokcho)을 보고
그리고 나는 이제 도서관에서 엘리자 수아 뒤사팽(Elisa Shua Dusapin)의 원작 소설 L'hiver à Sokcho(속초에서의 겨울)를 찾아 읽고 있다. 영화는 영화의 언어를 따르고 소설은 소설의 언어를 따르는 것이 보인다. 영화와 소설의 장면들을 이어가는 방식이 다르다.
소설의 첫 장면, 그의 도착을 서술하는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 Il est arrivé perdu dans un manteau de laine. » p.5.
"그는 양모 외투에 파묻혀 길잃은듯 도착했다."
바깥에서 아니면 외투 속에서 아니면 내면에서 어딘가 길을 잃거나 상실한듯한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소설의 65쪽까지 오면서 이미 영화에 나온 많은 장면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또한 영화에서 보지 못한 세세한 장면들이 펼쳐졌다.
65쪽, 목욕탕에서 엄마의 말에 '나1'(영화에서는 수아)는,
« Par provocation j'ai dit que je ne comptais pas changer de travail. La pension me faisait rencontrer des gens. Il y avait un dessinateur, j'aimais ce qu'il faisait. J'ai tu sa nationalité française.» p.65.
"도발적으로 나는 직업을 바꿀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팬션(일)이 내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해준다고. 그 중 한 삽화가(만화가)가 있는데, 난 그가 하는 작업을 좋아한다고. 나는 그의 국적이 프랑스라는 것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j'ai tu'에서 'tu'는 'taire'의 과거분사. 내가 말하는 것과 'dit' 말하지 않는 것 'tu'가 '디'와 '뛰'로, 발음 한 톤의 변화로 행위의 의미가 반대가 된다. 알고있었고, 말할 수 있었지만, 의도적으로 말하지 않았다는 의미를 품게 된다. 'tu'는 친분이 있는 사람을 부르는 인칭대명사 '너'와 철자와 발음이 같아서, 나(블로그 글쓴이)는 누군가의 앞에서 있고 입을 꾹 닫은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67쪽, 나와 그(케랑)는 설악산을 오른다.
« Souvent il s'arrêtait, retirait ses gants, effleurait un tronc, un rocher sous la glace, écoutait, avant de remettre ses gants et de poursuivre l'ascension toujours plus lentement. » p. 67.
"그는 자주 멈춰, 장갑을 벗고, 나무 줄기나 얼음 아래의 바위를 살짝 만져보고, 귀를 기울여본다. 그리고 다시 장갑을 끼고 계속 느리게 등반을 이어갔다.
'effleurer'는 케랑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effleurer는 꽃을 따는(떼어내는) 행위(ôter les fleurs, les fleurs d'une plante)에서부터 의미가 파생하는 단어다. 어떤 것의 표면을 벗겨내는 의미로 (ôter la fleur, le dessus de quelque chose; entamer superficiellemnet quelque chose) 이어진다. 어떤 것을 살짝 쓰고 훼손하는 의미(User à peine de quelque chose; porter une légère atteinte à quelque chose; entamer légèrement quelque chose)로 이어진다. 어떤 것에 살짝 닿거나 스치기만 하는 의미(Passer tout près de quelque chose; raser la surface quelque chose sans l'entamer; toucher légèrement quelque chose)로 연결된다. 어떤 것을 깊이 파고들지 않고 겉만 살펴보는)Examiner quperficiellement quelque chose ans l'approfondir)의미로 연결된다2.
케랑이 종이를 사려고 고르는 장면에서,
« Kerrand a effleuré les différentes sortes de feiuilles. » p.15.
케랑은 여러 종류의 종이를 살짝 만져본다.
나와 케랑이 버스에서 내려 헤어지는 장면에서,
« Avant de prendre la ruelle de l'annexe, Kerrand m'a effleuré l'épaule. » p. 18.
"별채 골목으로 접어들기 전, 캐랑이 내 어깨를 스쳤다."
내가 목욕 후 욕실에서 나올 때 케랑과 마주치는 장면에서,
« Ses yeux ont effleuré, à peine, mes seins sous ma chemise de nuit, sont descendus sur mes jambes avant de remonter très vite. » p. 60
"그의 눈길이 잠옷 아래 내 가슴을 스치고, 다리로 내려갔다가 아주 빠르게 다시 올라왔다."
69쪽, 케랑이 나에게 왜 프랑스어 공부를 선택했는지 물어본다.
나는 답한다.
« Pour parler une langue que ma mère ne comprendrais pas.» p. 69.
"엄마가 이해 못하는 언어를 말하기 위해서."
79쪽, 케랑과 내가 낙산으로 향을 사러 간 장면, 비가내리고, 케랑과 나는 탑 쪽을 향해 달려갔다. 내가 케랑에게 프랑스 해변은 여기보단 훨씬 반겨주는 분위기겠죠라고 말하자, 그가 답한다.
« Je n'aime pas tellement celles du Sud. Les gens s'y amassent mais n'ont jamais l'air vraiment satisfaits d'être là. Je préfère celles de Normandie, plus froides, plus vides. Elle portent aussi les marques de la guerre. »
"나(케랑)는 남쪽의 해변들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아요. 사람들이 그곳에 몰려들지만, 정작 거기에 머무는 것에 진심으로 만족하고 있는것 같지는 않거든요. 나는 더 차갑고, 더 비어있는 노르망디 해변 쪽이 좋아요. 거긴 전쟁의 흔적도 품고 있거든요."
케랑은 속초의 해변에 대해 말한다.
« Vos plages, [...] c'est comme une corde qui s'effile entre deux falaises, on y marche en funambules sans jamais savoir quand elle se brisera, on vit dans un entre-deux, et cet hiver qui n'en finit pas ! »
"당신의 해변은 [... ] 마치 두 절벽 사이에서 올이 풀리고 있는 밧줄 같아요. 사람들은 그 줄 위에서 곡예를 타며 그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고요. 줄이 언제 끊어질지 결코 알지 못한채로요. 그리고 이 겨울은 언제 끝날지 모르겠지요!
이렇게 향처럼 피어나던 '겨울'의 분위기가 케랑의 입으로부터 발화되고 명명되며 의미가 선명해진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내 사랑 히로시마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었다.
82쪽, 나는 케랑에게 그의 그림 이야기가 끝날때를 어떻게 아느냐고 물어본다. 케랑은 답한다.
« Mon héros atteint le stade où je peux dire qu'il vivait avant moi, qu'il vivra après moi. »
"내 주인공들이 나보다 먼저 살았거나, 나 이후에도 살아갈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단계에 다다를 때."
86쪽, 갑오징어를 요리하며 나는 케랑의 그림 생각한다.
« Lorsque je cuisinais, j'anticipais la finalité du plat. Apparence, goût, valeur nutritive. Lorsque lui dessinait, il donnait le sentiment de ne penser qu'au mouvement de l'avant-bras, l'image semblait naître ainsi, sans idée préconçue. » p.86.
"요리를 할 때, 난 완성된 요리를 내다보았다. 겉모양, 맛, 영양가. 그릴 때의 그는, 팔의 움직임만을 생각하는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미지는 미리 구상한 것도 없이 탄생하는 것 같았다."
나는 옆에서 엄마가 요리하는 장면을 지켜본다. 꿈틀거리는 복어(fugu)의 지느러미를 자르고, 껍질을 벗겨내고, 목을 자른다. 그리고 독이든 내장을 꺼낸다. 내겐 아직 허가되지 않은 일이다.
엄마를 지켜보던 나는 오징어의 먹물을 떠뜨린다.
92쪽, 팬션 주인 박(Park)이 라디오를 틀었다. 케이팝 그룹의 유행가가 흘러나왔다. 케랑은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물어본다.
« Vous non plus, vous ne supportez pas ça ? » p. 92.
"당신도 역시, 저건 못견디나요?
« Je n'osais pas le dire. »
"그에대해 제가 감히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둘은 웃는다. 그리고 나는 그동안 감히 못했었던 라디오를 끄는 행위를 한다. 침묵이 흐른다. 케랑이 나를 바라본다.
라디오 소리는 방어막같은 작용을 하고 있었던지도 모른다.
100쪽, 카페에서 케랑이 나에게 물어본다.
« Vous n'avez pas de petit ami? » p. 100.
"당신은 남자친구 없나요?"
« J'ai hésité, avant de répondre non. Boy-friend. Je n'avais jamais compris ce mot, ni sa version française. En quoi l'adjectif petit qualifiait-il un amant? »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없다고 대답했다. 보이-프렌드. 나는 이 단어도, 이 단어의 프랑스어 버전도 절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작은(petit)이라는 형용사가 연인을 규정할 수 있는지?"
겨울의 속초는 겉으로는 비어있는 도시처럼 보이지만, 소설의 장면 장면은 이미지, 소리, 냄새, 긴장감으로 가득차있다.
그리고 영화와 책의 결말은 같은 것 같지만, 결정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 어찌보면 이방인인 얀 케랑의 정체성이 분명해보인다, 관계속에서만 정체성이 주어지는듯한 '나'에 비하면. [본문으로]
- ÉFFLEURER : Définition de ÉFFLEURER (cnrtl.fr)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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