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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링컨이 "나는 다른 누구 못지 않게 백인종에게 우월한 지위가 주어지는 것을 지지한다"라고 말했다?

by Jeanjac 2026.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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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린 펠뤼숑의 『동물주의 선언』에 나오는 링컨과 스테판 제이 굴드의 『인간의 오측정』에 나오는 링컨이 서로 모순적이라 확인작업을 하고 있다. 

 

코린 펠뤼숑이 참조한 링컨은 1862년 노예제 문제에 관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상황은 어려움으로 가득하며, 우리는 이 상황에 맞서 일어서야 합니다. 우리의 위치가 새로운 만큼, 우리는 새롭게 새각하고 새롭게 행동해야 합니다. [...] 동포 여러분, 우리는 역사를 피할 수 없습니다. [...] 우리가 따라야 할 길은 명확하고, 평화로우며, 관대하고, 정의롭습니다."

 

 

 

그런데 스테판 제이 굴드가 참조한 링컨은 1858년 스티븐 더글러스와의 토론 중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백인종과 흑인종 사이에는 신체적 차이가 있으며, 나는 이것이 두 인종이 사회적, 정치적 평등의 조건 하에서 함께 사는 것을 영원히 금지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함께 살 수 없는 한, 그들이 함께 머무는 동안에는 우월한 위치와 열등한 위치가 있어야만 하며, 나 또한 다른 누구 못지않게 백인종에게 우월한 지위가 주어지는 것을 지지합니다."

(스티븐 제이 굴드의 텍스트를 NotebookLM에서 좀더 조사해본다.)

 

NotebookLM : 이 외에도 링컨은 1859년에 작성한 사적인 메모에서 "흑인 평등! 헛소리!(Negro equality! Fudge!)"라고 적으며 당시의 인종 평등 주장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자료의 저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는 이러한 인용구들을 통해 다음과 같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 시대적 배경: 링컨이 노예 해방과 관련하여 큰 존경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18~19세기 서구 사회의 지도자들과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인종 간의 서열을 나누는 관념이 매우 보편적이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 해방과 평등의 분리: 링컨은 노예제도에는 반대하고 흑인의 자유를 지지했지만, 그것이 곧 생물학적 평등을 의미한다고 믿지는 않았습니다.
  • 과학적 인종주의의 영향: 이러한 정치인들의 발언은 당시 과학자들이 가졌던 사회적 편견과 일치했으며, 과학적 데이터가 객관적으로 수집되기 전부터 이미 사회적으로 합의된 믿음이 과학적 결론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따라서 해당 발언은 링컨 개인의 특이한 주장이기보다는, 인종적 서열화가 당연시되었던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는 사례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나 : 링컨이 노예제도 폐지를 주장한거 아니야?

NotebookLM : 에이브러햄 링컨은 노예제도에 반대했으며, 인류 역사상 노예 해방을 이끈 인물로서 가장 높은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료에 따르면, 당시 18~19세기 서구 사회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자유에 대한 권리'와 '생물학적 평등'을 별개로 보는 관점이 매우 보편적이었습니다. 링컨의 입장을 자료에 근거해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노예제 폐지와 인종적 서열의 공존: 링컨은 노예제도에는 반대하고 흑인의 자유를 지지했으나, 그것이 곧 백인과 흑인이 생물학적으로 평등하다는 믿음을 의미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1858년 토론에서 두 인종이 사회적, 정치적으로 평등하게 살 수 없으며, 따라서 백인이 우월한 지위를 갖는 것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 '온건파(Soft-liners)'의 논리: 자료는 링컨을 당시의 '온건파' 지식인들과 같은 맥락에서 설명합니다. 이들은 흑인이 (당시의 편견에 따라) 지적으로는 열등할 수 있다고 보면서도, 토머스 제퍼슨이 말했듯 "재능의 정도가 권리의 척도가 될 수는 없다"고 믿으며 노예제 폐지를 주장했습니다.
  • 시대적 한계: 저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는 링컨이 흑인 병사들의 활약을 보며 그들에 대한 존경심을 키우기도 했지만, 인종 간의 서열을 나누는 당시의 일반적인 사회적 합의로부터는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지적합니다.
결론적으로 링컨은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고 실행한 위대한 인물이지만, 동시에 흑인의 자유를 지지하는 것과 백인의 우월적 지위를 지지하는 것을 서로 모순되지 않는 것으로 여겼던 당시 시대상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로 인용되고 있습니다.

 

나 : 그의 노예제 폐지 연설은 뭐지? 링컨은 위선자인가?

NotebookLM : 에이브러햄 링컨의 노예제 반대 입장과 인종에 관한 그의 개인적인 견해 사이의 간극은 현대의 관점에서는 모순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자료의 해석을 통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1. 링컨의 노예제 폐지 관련 주장과 연설의 배경 자료에서는 링컨의 특정 ‘노예제 폐지 연설’ 전문을 다루기보다, 그의 정치적 입장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1858년 스티븐 더글러스와의 토론(Douglas debates) 내용을 주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 권리와 능력의 분리: 링컨은 토머스 제퍼슨과 마찬가지로 “재능의 정도가 권리의 척도가 될 수는 없다”는 ‘온건파(soft-liners)’의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즉, 흑인이 지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 백인과 대등하지 않다고 믿으면서도, 그들이 인간으로서 자유를 누릴 권리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 1858년 토론 발언: 그는 토론에서 백인과 흑인 사이에는 두 인종이 사회적, 정치적으로 평등하게 살 수 없게 만드는 신체적 차이가 있으며, 따라서 백인에게 우월한 지위가 주어지는 것을 지지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노예제라는 제도적 속박을 지지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유를 가진 상태에서의 사회적 서열을 의미한 것이었습니다.
2. 링컨은 위선자인가? (자료의 해석) 저자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는 링컨을 단순한 위선자로 규정하기보다 시대적 한계 안에서 도덕적 원칙을 실천한 인물로 평가합니다.
  • 시대적 합의: 18세기와 19세기 서구 사회의 지도자들과 지식인들 사이에서 인종 간 서열이 존재한다는 믿음은 거의 질문의 여지가 없는 ‘보편적인 사회적 합의’였습니다. 굴드는 이러한 과거의 인물들을 현대의 도덕적 잣대로만 비판하는 것은 그 시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조언합니다.
  • 평가의 핵심: 링컨이 오늘날에도 국가적 영웅으로 존경받는 이유는 그가 가진 개인적인 편견에도 불구하고, “생물학적 판단을 도덕적 이슈 및 사회적 정책에 대한 판단으로부터 분리”해냈기 때문입니다. 즉, 개인적으로는 인종적 우열을 믿었을지라도, 정치적·도덕적으로는 모든 인간의 평등한 권리를 위해 싸웠다는 점이 그를 위대하게 만드는 요소로 평가됩니다.
결론적으로, 자료에 따르면 링컨의 발언은 현대적 의미의 위선이라기보다는 노예제 반대라는 도덕적 신념과 당시 사회의 인종주의적 편견 사이에서 고민했던 19세기 인물의 복합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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